틈이 있어야 감정이 흐른다

Translated by AI
어느 날,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던 중 물소리가 TV 대사를 덮고 있었다. 그 순간 문득 마음에 떠오른 한 마디.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내 슬픔은 어디로 갔을까?"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슬픔은 몸속에 숨어 있다고, 굳어진 어깨 근육 속에, 깊은 밤 젖어 있는 베개 속에. 하지만 그것들은 슬픔 그 자체가 아닌, 슬픔이 남긴 흔적들일 뿐이다.
나는 현상학자 후설의 생각이 떠올랐다. 모든 것을 경험 그 자체로 되돌리고자 하는 사고 방식. 감정은 추상적이지 않다. 철학책 속의 냉정한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활발히 숨 쉬며, 손가락으로 뺨을 스칠 때 느껴지는 피부의 차가움이다. 기차역 플랫폼에 서서 사람들이 흩어졌다가 다시 모였다가 또다시 흩어지는 것을 보며 느끼는 정체 불명의 감정의 흐름이다.
우리는 감정을 서랍에 넣어 질서 있게 정리된 옛날 편지처럼 잠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감정은 순순히 그 안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스며들고, 곰팡이가 피고, 서랍의 틈새로 기어나와 방심한 순간, 향기, 노래, 대화를 통해 우리를 완전히 휘말리게 한다.
한 친구가 있다. 그는 항상 온화하고 유연하며 웃으며 사람들과 대화한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사소한 문제에 갑작스레 화를 내며, 내전이 일어난 것처럼 분노했다. 나중에 그는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그는 소파에 앉아 두 시간 동안 울었다. 나는 갑자기 알게 되었다. 내재된 감정은 침묵도 봉인도 아니며, 단지 출구와 틈을 기다리고 있다가 가장 어리석은 방식으로라도 나오려 한다는 것을.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우리는 육체를 소유한 영혼이 아니라, 육체 자체가 경험의 세계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우리의 감정은 사고의 산물이 아닌 경험의 연장선이다. 길을 걷다가 바람을 맞았을 때 피부가 수축하는 순간, 말이 막히는 순간 목이 꽉 죄어지는 것이다.
내재된 감정은 이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신체의 막힘이다. 마치 처마 끝에 빗물이 고이듯,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어느 날 물 한 방울이 떨어져 오래된 벽의 틈을 박살낼 때처럼.
그래서 결국 우리는 감정이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감정이 필요한 것은 분석과 성찰이 아니라 단지 열고 이야기하고 글을 쓰며 흐르게 하는 것이다. 빛처럼 출구가 필요하며, 바람처럼 나갈 방향이 필요하다.
때로는 음악, 때로는 글쓰기, 때로는 달리기, 여행, 침묵이 방법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감정이 계속해서 마음속에 막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성의 화산이 되어, 결국 아무도 없는 밤중에 조용히 붕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2020 년 새해, 나는 런던의 오래된 거리를 걸었던 기억이 난다. 바람이 매서웠고, 내 마음도 텅 비어 있었지만, 그 순간 내 슬픔이 '내 몸을 떠났다'라는 감정을 느꼈다. 버려진 것이 아닌, 스스로 바람처럼 내 몸을 떠나 회색 하늘로 간 것이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으며, 다만 가벼움만 남았다.